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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기고 칼럼

KeSPA가 공표한 FA 제도가 얼토당토 않은 네 가지 이유.

pgr21의 The xian 님 기고입니다.

 http://www.pgr21.com/zboard4/zboard.php?id=free2&page=3&sn1=&divpage=7&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38599



하나. FA(Free Agent)제도에서 선수들에게 팀을 선택할 자유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모순이며 선수 권리 침해입니다.

스포츠에 따라 규정의 차이가 있지만, FA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일정 년수 이상을 채운 선수들에게 원 소속팀을 포함하여 팀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그런데 KeSPA에서 내놓은 프로게이머 FA에서는 선수들에게 원 소속팀을 제외하고 다른 팀과의 계약을 할 경우, 무조건 가격을 가장 높이 부른 게임단과 계약해야 한다는 조항을 집어넣었습니다. KeSPA가 만든 조항 중 역대 최고의 독소조항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장 많은 연봉을 제시한 팀과 무조건 계약해야 한다'라는. FA라는 말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이런 내용을 집어넣은 이유에 대해 - 포모스 기사에 의하면 - 프로게임단 관계자라는 사람이 한 말은 더더욱 가관입니다. "FA 계약에 있어 가장 문제가 되는 사전접촉과 담합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랍니다. 물론 얼토당토않은 소리이지만, 이 말을 거꾸로 해석하자면, FA 선수들을 비롯한 모든 프로게이머들을 옥죄기 위해 KeSPA의 이사사들이 모두 담합했다는 이야기라고 말해도 되겠지요. 안 그렇습니까?

FA 대상 선수들은 FA계약에서 맘에 안 드는 팀이 가장 높은 연봉을 부르면 무조건 거기에 팔려가야 하고, FA 대상 선수들이 그것을 거부하거나 다른 팀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최종적으로 원소속팀에게도 외면당하면 준프로게이머로 떨어집니다. 프로게이머였던 선수가 준프로게이머가 되면 대회 참가가 완전히 막힙니다. 선수들은 밥줄이 걸려 있고 게임단들은 그 밥줄을 죄는 것이죠. 하지만 선수들은 자기 밥줄이 죄이고 인생을 걸었던 목표와 꿈이 없어지는 상황이라 선뜻 누가 하나 총대를 메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고 팬들 역시 그것을 강요하기도 뭣합니다. (혹자는 임요환 선수가 나서달라고 말하는데, 그분은 이번에 FA 대상자도 아니라 발언을 한다 해도 그게 먹힐 지 의문입니다.)

노예매매가 따로 없습니다. KeSPA의 FA가 Free Auction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죠.


둘. 연봉 공개도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투명한 계약이 이루어진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이번에 나온 FA 보상규정에 따르면 "FA 대상 선수를 영입하고자 하는 프로게임단은 원소속 프로게임단에 선수 연봉의 200%를 지급하거나, 영입 프로게임단이 지정한 보호선수 6명을 제외한 선수 1명과 연봉의 100%를 지급하여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연봉 5천만원 미만의 선수인 경우 2009년 6월에 의결된 내용에 따라 위에 명시된 보상규정을 적용하지 않으므로, 연봉 5천만원 미만의 선수를 FA로 영입할 경우 돈만 투자하면 됩니다.

물론 이것 때문에 게임단들은 '싼 FA 대상 선수'를 찾고자 하겠지요. 그러나 문제는, 현재 최초 FA 대상 선수들의 연봉이 공개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매스컴 등을 통해 연봉이 공개된 선수들 이외에는 (더불어 그게 정확한 연봉이란 보장도 없고) 각 프로게임단의 프런트나 감독들조차 다른 팀의 FA 대상 선수에 대한 정확한 연봉을 알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하죠. KeSPA 관계자는 원천징수 영수증을 통해 증빙할 수 있다고 말을 하지만 그것은 속된말로 '당신네들 사정'이고, 프로스포츠인 이상 계약이라는 것은 투명할 수록 좋은 것이며, 비록 한줄짜리 기사로 나간다 해도 FA계약을 통해 받게 되는 연봉 액수 등등은 투명하게 공개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프로스포츠에서 '돈'이 대중에게 공개되어도 김승현 선수(프로게이머 아닙니다) 이면계약 사태와 같은 일이 일어나는 상황인데, '돈'이 투명하지 않은 E-Sport에서 제대로 된 FA 계약이 이루어진다는 보장이 있을까요? FA와는 거리가 있는 예시이지만, '레전드'인 이윤열 선수조차 팬택에서 연 2억에 계약했다고 발표되었지만 나중에 실제로는 1억 2천밖에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을 생각한다면, 연봉이 대중에게 공개된 전설급 선수도 이렇게 사실을 속이고, 불이익을 받는 판에서 연봉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 선수가 받게 되는 부작용과 불이익이 어느 정도일지는 짐작조차 되지 않을 것입니다.


셋. 에이전트 선임을 금지한 것은 프로게이머를 무시하는 처사이자, 대놓고 불평등 계약을 하겠다는 행동입니다.

FA 대상자 교육에서 KeSPA는 E-Sport FA의 경우 에이전트 선임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단서를 달았는데, FA 자격을 취득한 선수가 미성년자이거나 부득이한 사정으로 직접 FA 관련 업무를 협의할 수 없을 경우 법정 대리인인 친권자에게 업무를 대행할 수 있게 했다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 프로게이머들을 미취학 아동과 같이 취급하는 행동입니다.

예, 물론 어떤 프로게이머는 굳이 에이전트 필요 없이 자의로 모든 것을 파악해서 계약과 관련된 협약을 할 수도 있고,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친권자가 권한을 행사할 필요성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선수의 자유 의지에 따라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죠. 만일 선수가 FA 등에 대해서 잘 모른다면 자신의 계약을 위해 친권자이건 에이전트이건 법적, 절차적 도움을 받을 수 있어야 정상이지 않을까요. FA는 선수의 권익 보호를 위해 행해지는 것이지 게임단이 맘대로 선수들을 사고 팔고 묶기 위해 행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프로게이머들은, 선수들은 오로지 E-Sport, 그것도 스타크래프트 한 종목만 바라보고 짧게는 3년, 길게는 거의 10년 동안 자신의 가장 젊은 날을 바치며 달려온 선수들입니다. 특히 FA 대상 선수 정도의 커리어를 쌓은 이들 중에는 이 세계에서 자신의 이름을 새긴 전설적인 선수들이 많지요. 단적으로 우승자만 해도 박찬수, 박지수, 강민, 송병구, 김택용, 최연성, 이제동, 마재윤, 박성준, 박성균, 이윤열, 김준영 등 12명이나 됩니다.

이런 선수들이 적수공권의 상황에서 게임단들과 계약을 받아야 하니, 다른 선수들은 어떨지 감이 안 잡힐 정도입니다. 결국 기대해야 하는 것은 게임단들의 '선의'뿐인데(풋) 이런 엿같은 규정을 만드는 데에 동의한 게임단들이 선의를 발휘해 줄 가능성은 그다지 보이지 않는군요. E-Sport 10년을 이끌어 온 선수들이 노예가 되는 꼴을 두 눈 뜨고 봐야 한다는 것이 어이가 없습니다.


넷. 사전 접촉과 담합에 대한 처벌 규정이 없습니다... 왜? 그들이 담합했으니까요.

하태기 감독님이 담합 이야기를 했을 때, KeSPA 관계자는 "11개 프로게임단이 모두 담합을 하거나 39명의 선수가 모두 담합을 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본다"라는 황당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나 처벌 규정이나 제한 규정이 없는 상황에서 개별적인 사전 접촉이나 이적을 담보로 한 담합이 이뤄질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곳간 문 죄다 열어놓고 도둑이 들지 않기를 바라는 안일한 생각일 뿐입니다.

물론 인력풀이 워낙 좁고 관계자들끼리 서로 형동생 하는 사이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담합이나 사전 접촉으로 규정해서 엄한 선수나 관계자 잡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온정주의' 때문에 제도가 잘 운영되도록 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포기하겠다는 건 법칙도 아닐 뿐더러 상식적으로 봐도 어이가 없지요. 참. 사전 접촉이나 담합 가능성에 대해 KeSPA 관계자는 '시기상조'라고 하면서 자꾸 담합 같은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것 같은 뉘앙스를 풍겼는데, 그렇게 생각하면 이번에 내놓은 FA 규정이 KeSPA 이사사들의 '담합'에 의해 이루어졌기 때문에 처벌 규정을 만들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요?

자기가 만든 칼로 자기를 찌를 리가 없잖습니까.

적어도 제가 보기엔 11개 프로게임단은 이번에 '확실히' 담합한 것 같다는 '오해'가 듭니다.



한줄요약.

KeSPA 이사사들의 노예가 되느니 차라리 블리자드의 노예가 되는 게 낫겠습니다. 젠장할.


- The xian -